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도 다 내게온다. 기다려본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만큼 가슴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난 너에게로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아주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가슴에 쿵쿵 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난 너에게로 가고있다.

가슴이 멍한 십일월 이십구일, 이천육년에 옮겨적다......
by 의식의일관성 | 2006/11/29 22:50 | Heart | 트랙백
황우석 구하기
인터넷을 보니, 황우석 박사 구하기가 한참이다. 개인적으로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김규항은 어떤 생각인가 싶어, 들어가 보았더니.. 역시 우려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황우석 박사의 학문적 성과와 연구과정에서 저질러진 절차상의 과오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문적 성과가 진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결과뿐 아니라 절차상의 흠결도 없어야 한다는 것은 연구방법론의 기본이 아니던가. 황박사의 절차상의 오류는 사회과학에서 일어나는 표절만큼이나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황박사의 잘못에 대해, 국익 운운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나는 황박사의 연구와 국익과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지 알지못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올바르지 못한 절차를 통해 얻어진 연구물에 대해 국익을 이유로 비판을 덮어두자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막연한 애국심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황박사의 연구가 생명공학 분야에서 인류에 기여할 수 있도록 건설적인 비판과 지원을 함께 아울러야 한다. 진정으로 황박사를 염려한다면, 지금은 매를 들 때다.
by 의식의일관성 | 2005/11/26 03:33 | Miscellaneous | 트랙백
백기완 선생
그를 오랜만에 만나 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5, 6년 전 대학교 강당에서 그의 말을 들어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가 전하는 시를 들으며, 난 그가 지나왔을 세월의 두께를,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인간의 의지가 얼마만큼 강할 수 있는지를, 그의 목소리는 알리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엿은 먹는게 아니야... 아무리 달더라도 먹는게 아니야.."란 선생의 말씀에 난 묵묵히 내 삶을 돌아보았다. 무엇하나 올바르거나 가치있는 일에 매달려 본 적이 있는가? 지금 가는 삶의 궤적이 의미가 있는가? 그의 목소리에 땅에 떨어진 엿을 한 입 가득 물고 있는, 내 가슴이 촉촉히 젖어온다.

- 백기완 선생님의 '낭독의 발견'을 보고 -
by 의식의일관성 | 2005/10/16 23:58 | Heart | 트랙백
사회안전망
여러 해 전, 프랑스 사회에서 실업률이 10%를 넘으면 사회 불안을 넘어 ‘사회 폭발’의 가능성까지 말했던 프랑스 학자들은 실업률 25%를 넘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남부의 지역사회가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던 것에 질문을 던졌다. 그 나라들은 프랑스에 비해 사회 안전망도 열악한데 어떻게 안정이 유지되는지 물었던 것이다. 그들의 답변은 아직 핵가족을 기준으로 한 가족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발전하지 않았고 씨족관계와 가톨릭 전통이 상부상조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지역사회의 안전망이 되고 있다는 점에 모아졌다.

사회 안전망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비해서도 열악한 우리나라의 농어촌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씨줄과 날줄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이번 추석에도 고향을 찾는 우리 모두 한번쯤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친척은커녕 부모 자식간에 청부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끔찍한 사회에서, 사람은 위함을 받을 때 남을 위할 수 있다는 단순명쾌한 답을 공유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하더라도.
(홍세화 종이비행기 47. 2005. 9.15)

한국사회의 취약한 사회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일정정도의 안전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정부가 해야할 몫을 가족,친척이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부가 유교적 덕목을 맹목적으로 강조하는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교를 권장하는 또다른 이유는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유도함으로써 별다른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by 의식의일관성 | 2005/09/30 07:11 | Research | 트랙백
한국인의 정체성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답을 하기 이전에 한국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것 몇 가지를 적어보자. 유교사상, 개화기, 일제침략, 광복, 좌우투쟁, 6.25전쟁, 박정희 개발독재, 전.노 군사정권,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다른 나라들의 경우, 수백년에 걸쳐 이루었을 근대화를 100년 남짓한 시간에 압축해서 경험한 한국인들은 어떠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을까... 한국사회를 아우르는 단어들을 생각해 보면, "빨리빨리, 대충대충, 내 가족, 학벌의 서열화, 후진적인 정치구조, 미국, 권위주의, 군사문화, 지역주의, IMF, 신자유주의 도래... 등등이 떠오른다.

600여년 동안 지배층의 이론적 통치기반을 제공한 유교가 제국주의 침략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자 당시 구한 말 조선의 지배층은 사상적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이내 동물적인 생존본능으로 유교를 대체할 이론으로 찾아낸 것이 진화론에 입각, 아시아 단결론을 주창한 일본에 붙는 것이었다. 일본 통치기간 동안 편안하게 지배권력을 유지하던 이들은 광복으로 다시 혼란에 빠진듯 했지만 곧 일본 자리에 미국을 순치함으로써 무탈하게 권력을 지켜낸다. 자신들의 보스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을 내세우던 이들은 민중의식의 확장으로 더이상의 무력통치가 어렵게 되자, 김영삼을 끌어들여 허수아비 보스로 내세운다. 결과적으로 김영삼은 IMF를 통한 신자유주의 유입의 일등공신이 됨으로써 그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해주게 된다. 이후 김대중의 당선은 민중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겨주는 듯 싶었으나, "악을 들여다 보면 악을 닮게된다"라는 말이 있듯... 오랜 세월동안 독재에 시달리던 김대중 정권은 이미 민중들을 위한 정부가 아니었다. 과거의 보상심리에 얽매여 지방 토호세력으로 전락한 그들의 적나라한 모습은 민주당 분당과 탄핵 사태등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이회창을 비롯한 주류권력의 세습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성난 목소리에 어부지리로 정권을 획득한 노무현은 대다수 민중들에게, " 이회창 막은 것만으로 5년 할 일 다했다"는 빈정거림에 시달리고 있다.

한 번도 민중의 자각에 의한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쫒는 권력자들의 성공스토리를 목도하면서 대다수 서민들이 학습한 것은 '노예근성' 뿐이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충성해서 내 한 몸, 내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기를 바라는...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에 남은 것은 지독한 생존경쟁과 타인에 대한 적대감, 약자에 대한 무관심, 강자에 대한 아부 뿐이다. 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사회 건설은 요원하다.

20년 동안 암기식 교육성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카스트'를 확인받은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은 이후 군대라는 강력한 폭력집단을 만나서 노예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속성을 전수받는다. 그 속성은 주로, "눈치보기, 힘이 곧 정의, 몰개성, 폭력에 대한 수용, 타인에 대한 적대화" 등이다. 시민사회에 필수적인 "약자에 대한 감수성,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정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 폭력에 대한 혐오" 등은 설 자리가 없거나 때론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신분상승의 여지도, 보다 나은 삶의 질 확보 가능성도 없는 사회구성원들이 이민을 고려하거나, 일확천금에 빠진다거나 하는 것은 일견 당연히 예측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진정 출구는 없는 것인가?
by 의식의일관성 | 2005/08/19 09:45 | Research | 트랙백
K의 어머니
오랜만에 K를 만났다. K와 나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동창이다. 광화문 인근 스파게티 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다가 의례적으로 부모님 안부인사를 건넸다. "어머니가 많이 아파, 오래 못 사실 것 같애... 폐암이야" K는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난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을 스치는 슬픔의 그림자를, 솟아 오르는 슬픔을 꾹꾹 억누르는 그의 모습을 읽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내내 K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K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반에서 상위권에 드는 수준이었다. 모두들 K를 그저그런, 평범한 친구로 알고 있었지만, 매일 매일 등교를 같이 하는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힘겹게 학교를 다니는 지를... 그는 다섯이나 되는 형과 누나들, 별 수입없는 아버지 사이에서 살아가느라 매일 아침 신문을 돌렸다. 새벽에 일어나 세시간씩 뛰어다니느라 그는 종종 늦곤했다. 그런 K였지만 언제나 삶에 여유가 있고, 당당했다. 잔머리를 굴린다거나, 자기 이익을 도모하거나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그가 가끔 불편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 K 어머님은 자상한 편은 아니셨다. K 어머니는 공부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가끔 내가 시험성적 보셨냐고 물어도 고개를 내젓곤 하셨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K는 아버지 벌이가 나아졌다며 신문을 그만 돌린다고 했다. 대신 시간을 내어 클래식 기타를 사서 혼자 배운다고 했다. 일요일에 찾아가면 잡다한 클래식 악보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를 몇시간씩 참아내야 했다. 클래식 수준은 날로 높아졌다. 악보도 점점 두툼해져갔다. 재미있는 건, 늘어가는 기타수준에 비례해서 그의 학교성적이 올라갔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학력고사를 보고 온 다음날 아침.. 해방감에 들떠서 떠드는 아이들 속에 가만히 고개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뭐하니" 하고 묻자 "어제 틀린 문제 풀어보고 있어.. 이렇게 쉬운걸 왜 틀렸지." 아뭏튼 그는 그해 대한민국 모든 학생이 가고싶어한다는 S대 인기학과를 가볍게 붙었다. 며칠 후 난 K의 집에 들렀지만 어머님만 계셨다. "어머님, 좋으시지요.." 어머님이 배시시 웃으며 " 좋지 뭐.. 근데 K가 무슨 과에 붙었냐, 한 두번 들었는데 자꾸 까먹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분의 교육철학이 올바른 것임을 느낀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노동의 신성함을 알게 하며, 자립심을 키워주는 교육... 삼십 중반을 넘어선 지금에서야 깨닫는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친구 손에 십만원을 넣어주며 말했다. " 내대신 어머니 쇠고기 좀 사다드려..." 부모님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난 괜히 서러운 눈물이 난다.
by 의식의일관성 | 2005/08/10 22:32 | Heart | 트랙백
내 쓸쓸함의 정체 (홍세화)
내 쓸쓸함의 정체

"돌아온 땅 곳곳에서 사람들의 기름진 모습을 만날 때 깊이 간직했던 늠름한 민중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 홍세화/ <한겨레> 기획의원

전두환 정권 초기였으니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내가 점원으로 일하던 파리 오페라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사람은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한다. 고문이 고문인 까닭은 참을 수 없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고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지금은 1987년 6월항쟁을 되돌아보면서 민주화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서슬 퍼런 시절에 그 무도한 폭압정권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최근 출간된 <대화>에서 리영희 선생이 밝혔듯이 지식인에게 자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방인의 삶, 담배는 그러한 삶에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속절없이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어느 여인이었을까, 스치듯 지나가는 바바리코트의 뒷모습에 울컥 하면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마구 흘러내릴 것 같아 도리질을 치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여인의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다만 그녀의 바바리 자락의 작은 흔들림에 나는 왜 그렇게 흔들린 것일까? 저 깊은 심연으로 마냥 떨어지는 느낌, 그것은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의지에 맞선 삶의 외침이었을까, 아니면 30대에 사회를 잃어버린 이방인이 가져야 했던 슬픔의 깊이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그 의미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때부터인 듯, 아니면 그 전부터일 수도, 우울은 병이 아니라 삶의 증거가 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돌아온 땅에서 나는 분노보다는 슬픔을, 슬픔보다는 쓸쓸함을 느낀다.

사람의 의식은 처지에 따라 바뀐다고 하지만 정서는 바뀌지 않는가 보다. 20여년의 공백을 두고 다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이 바뀐 것에 비해 정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가 분노보다는 슬픔을, 슬픔보다는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처지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이 탓인 게 분명하다. 황혼의 나이엔 분노나 슬픔보다는 쓸쓸함이 어울린다.

본디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내 쓸쓸함은 사회적이다. 나는 쓸쓸한 독거노인을 볼 때보다 어린 학생들이 장래희망으로 ‘CEO’를 꼽을 때 더 쓸쓸함을 느낀다.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냐?”라고 묻는 동창생에게 “너는 왜 그렇게 사냐?”라고 똑같이 대꾸하기 전에 먼저 쓸쓸함을 느낀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주의와 그에 맞선 인간성의 항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함에 쓸쓸함을 느낀다. 어느 날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가다가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부딪힐까 염려되어 문을 지치고 있었는데 뒷사람이 열려 있는 틈으로 살짝 들어가더니 그 뒷사람도 줄줄이 뒤따라 들어갈 때 계속 문을 지치고 있으면서 느낀 것도 쓸쓸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뜬금없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말할 때에도 황당하다는 느낌과 함께 쓸쓸함이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이 땅 곳곳에서 시시때때로 쓸쓸함을 느낀다. 지면이나 화면을 통해 다시 만나는 그때 그 사람들의 기름진 모습에서도 분노보다는 쓸쓸함을 느끼고, 옛 동지의 출세한 모습에서도 쓸쓸함을 느끼고, 옛 동지의 삶에 지친 모습에서도 쓸쓸함을 느낀다. <한겨레> 출근길에 층계참을 오르면서 자주 다가오는 감정도 쓸쓸함이다. 이 쓸쓸함에 차라리 깊이나 층위의 차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도 못하다. 그저 잔잔할 뿐. 도대체 이 쓸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을 품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서 오는 것일까?

가령 귀국 뒤 택시 노동자들에 대한 동료의식이 점차 사라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택시 노동자의 눈’을 갖겠다고 했던 내가 이 땅의 택시 노동자들에게서 작은 동질감마저 느껴본 적이 없다. 택시 노동자들에게서 소우주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귀국 직후 택시를 타면 신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먼저 말을 걸었는데 최근에는 택시에 올라 내릴 때까지 입을 봉하고 있다. 처음에는 택시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파리와 서울의 차이를 얘기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좁은 택시 안의 공기는 서먹해지곤 했다. 대화의 주제가 <한겨레>로 넘어갈 때가 있는데, 택시 노동자들이 <한겨레>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았다. <한겨레>가 편향적이라거나 심지어 ‘빨갱이 신문’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들 중 누구도 ‘당연히’ <한겨레>를 읽지 않았다. <한겨레>를 읽지 않은 채 그들이 갖고 있는 <한겨레>가 편향되었다는 확신은 흔들릴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택시 노동자들과 만나며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한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택시 노동자들은 열린 자세로 <한겨레> 구성원에게서 <한겨레>에 대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이미 형성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고집하고 있었다. 하긴 <한겨레> 구성원에게서 <한겨레> 얘기에 귀기울인다고 하여 그들의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땅의 대중은 천민자본주의 아래 파편화되고 피폐해진 원자로서 조금도 무식하지 않았다. 끝내 민중성에 대한 믿음과 연대의식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저 깊은 곳에 간직했던 늠름한 민중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쓸쓸함은 큰 부분이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아내는 여름이 오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아들이 남아 있다는 핑계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땅이 쓸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선 돈이 아직 사람들을 덜 이간질하고 덜 오염시켰다. 나는 아내의 쓸쓸함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내 쓸쓸함이 잔잔한 따뜻함조차 안고 있지 못한 탓이다.

(출처 : 한겨레 21, 571호, '05. 8. 9, 종이비행기 47)
by 의식의일관성 | 2005/08/08 13:22 | Miscellaneous | 트랙백
한겨레신문
그러고보니 한겨레를 본 지가 얼추 10년이 넘은 듯 하다. 1996년 6월, 제대를 하고 백수로 지낼 즈음, 난 한겨레에서 백두산 순례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아하 백두산이라.... 당시 오랜동안 막혀있던 백두산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3년여의 군대생활을 통해 마련한 퇴직금의 상당부분을 내고 다녀온 그 여행은 두고두고 맘 속에 남았다. 사실 나를 흥분시킨 것은 백두산 자체보다도 그 여정에서 만난 것들이었다. 처음으로 대한 만주 땅은 불과 수십년 전 일제를 피해 숨어든 독립군의 정기가 아직도 서려있는 듯 했다. 용정지역에서 윤동주 기념관을 둘러보고, 조선족들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사이 난 마음이 찹찹했다. 그당시 그들이 느꼈던 분노와 마음 속 응어리가 날것으로 전달되는 느낌... 난 마음이 막막해져갔다.

한겨레신문이 지편개편을 하고 난 후,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금요일날 발행되는 18.0 (지성,책) 섹션이다. 아침 출근 버스에서 그 난에 실린 8.15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10년 전 그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겨레 좀 더 치고 나가라....
by 의식의일관성 | 2005/08/05 09:04 | Heart | 트랙백
작지만 강한 정부
흔히 이야기 되는 "작지만 강한 정부"라는 문구는 좀 더 보완이 필요하다. 각각의 주어가 빠져있는 것이다. 즉, "(자본에는 한없이) 작지만 (노동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정부" 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정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신자유의의 역사와 진실, 강상구)

이야기 하려면 좀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자.
by 의식의일관성 | 2005/08/04 09:15 | Book Review | 트랙백
개인
별달리 가진 것 없고, 사회적 계급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옆의 노동자가 자본주의 경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게을러서 그렇다는 등...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는 늘상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다. 자유주의가 태동하던 시기는 중세 봉건제도가 붕괴하고 초기 자본가, 즉 부르죠아들이 태동하던 때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영주의 간섭을 받지않고 자유롭게 자본을 축척할 권리를 지닐 수 있기를 원했다. 즉...이들이 말하는 "개인"이란, 자본을 축척한 개인, 즉 부르죠아지의 자유를 이야기 한다. 가진 자본이라곤 몸 하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부르죠아지들과 동일시 할 때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자본은 이제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마저 배반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한다.

아침부터 덥다.
by 의식의일관성 | 2005/08/03 08:53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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